고리1호기 해체작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국내 유일 원자력발전소 설계 수행 기관인 한국전력기술은 지난 1일 원전 해체와 방사성 폐기물 사후관리 사업을 담당할 원전해체사업실을 신설했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 해체부터 부지 복원 완료까지 최소 1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발전기 가동을 멈춘 고리1호기에선 지금 이 시간에도 폐연료봉을 식히는 냉각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폐연료를 충분히 식히지 않으면 외부 반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고리1호기를 통해 독자적인 원전 해체 기술을 확보해 수백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세계 원전 해체 시장에 뛰어들 계획이다. 중앙SUNDAY는 원전 해체 전 과정과 국내 기술 수준을 들여다봤다.
원전은 건설보다 해체에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한 지구상 유일한 건축물이다. 원전 1기 건설에는 7년이 필요하지만 해체에는 15~20년이 소요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성 물질 오염 때문이다. 지난 6월 가동을 멈춘 고리1호기 원자로와 급수파이프 등 내부 시설에는 방사성 물질이 그대로 남아 있다. 폐연료봉 제거가 끝나면 본격적인 원전 해체작업이 이뤄진다. 우선 방사성 물질을 닦아내는 제염 과정이 진행된다. 거품 형태의 제염액을 파이프 내부에 뿌린 다음 방사성 물질을 녹여 닦아낸다. 거품은 표면적을 넓힐 수 있고 수직으로 세워진 파이프에서도 흘러내리지 않기 때문에 한국원자력연구원은 거품 제염액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원전 해체 기술에서 앞선 미국과 독일은 초음파 세정이나 연마재로 방사성 물질을 닦아내는 방법도 활용하고 있다. 이는 초음파를 활용해 안경을 닦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안석영 부산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국내 제염 기술력은 선진국 대비 80% 수준이다”고 말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110만㎾급 원전 1기를 철거하면 방사성 폐기물 6000t이 발생한다. 58만㎾급인 고리1호기에선 단순 계산으로 3000t가량의 방사성 폐기물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제염은 쓰레기 분리수거 작업과 닮았다. 쓰레기 중에서 재활용품을 따로 골라내듯 오염된 곳을 따로 분리해 방사능 때를 벗겨내야 한다. 제염액은 특수 장비로 걸러 방사성 물질을 분리한다. 김희령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기계·원자력공학부 교수는 “프랑스 원전 기업 아레바가 제염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데 제염액 1000L당 방사성 찌꺼기가 30L 정도 나온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찌꺼기를 20L로 줄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원전 해체에서 하이라이트는 원자로 해체다. 원전 심장부로 불리는 원자로에선 핵연료를 통한 핵분열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고준위 방사성 물질이 발생하는데, 오염도가 높아 제염만으로 이를 모두 제거할 수 없다. 핵연료를 담아 두는 곳인 만큼 방사성 물질 오염이 심하기 때문이다.
원자로는 두껍고 무거운 금속덩어리다. 이런 이유로 운반이나 보관이 힘들다. 일반적인 원자로는 두께가 20㎝가 넘는다. 고리1호기 인근 신고리3호기 원자로는 높이 14.8m, 지름 4.6m에 두께는 29.2㎝에 달한다. 원자로 내부에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기에 로봇을 활용해야 한다. 원전 12기를 해체한 경험이 있는 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는 거대한 수조에 원자로를 담근 다음 로봇을 이용해 분해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관계자는 “절단부터 폐기물용 드럼통에 넣는 작업까지 모두 로봇을 이용하기 때문에 로봇공학, 화학,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보듯 고준위 방사성 환경에선 로봇이 작동 불능 상태에 빠질 수도 있어 이를 견디는 로봇을 만드는 게 핵심 기술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은 원자로 해체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원격절단 시뮬레이터를 개발하고 있다. 고리1호기의 도면을 활용해 원자로를 3D로 재구성하는 것으로, 개발이 완료되면 원자로 절단작업을 가상으로 연습할 수 있다.
원자로 해체가 끝나면 부지 복원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부지 복원은 미국 대비 국내 기술 수준이 17%에 불과하다. 김희령 교수는 “부지 복원을 위해선 방사성 물질이 어디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측정해야 하는데, 이와 관련된 기술은 현재 실험실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실시간 측정 기술을 확보하는 게 과제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원전(15기)을 해체한 미국은 기존 원전 부지를 녹지와 주차장, 박물관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한국은 원전 해체에 필요한 58개 상용화 기술 중 부지 복원 등 17개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정부와 한수원은 고리1호기 해체에 64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여기엔 사용후 핵연료 321t 처리비는 포함되지 않았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 방법에 따라 원전 해체비는 고무줄처럼 늘어날 수도 있다. 원전 해체로 발생하는 방사성 폐기물은 오염도에 따라 처리 방법이 다르다. 중·저준위 폐기물은 경주 방폐장으로 보낸다. 문제는 사용후 핵연료 등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다. 정부는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영구저장소를 아직까지 마련하지 못했다. 현재 검토하고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사용후 핵연료를 인근 고리2~4호기 저장 수조로 옮기는 게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임시저장소를 건설하는 것이다. 정부와 한수원은 고리1호기 해체 부지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50년 동안 임시로 저장할 수 있는 건식저장소 신설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를 놓고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최선수 고리원전민간환경감시기구 감시센터장은 “중수로 건식저장소와 달리 경수로 건식보관소는 국내에서 건설된 전례가 없다. 경수로 사용후 핵연료는 중수로에 비해 농축도가 더 높은 만큼 고리1호기 인근 주민들의 걱정이 클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즉시해체가 아닌 60년 이상 원전을 그대로 두는 지연해체 방식으로 전환해야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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